별도, 행성도, 작은 돌멩이도 없는 태양계 바깥의 우주 한가운데. 700kg이 넘는 거대한 탐사선이 멀어진다. 고요한 기계 한 귀퉁이에는 작은 금속판이 붙어있다. 비록 계획된 임무는 끝났지만, 작은 금속판 하나는 본인의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외로운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는 1977년 발사되었다. 목표는 태양계의 거대한 목성형 행성들을 탐사하는 것이다. 마침 목성형 행성들이 서로 가까운 시기였다. 한 번의 발사로 많은 행성을 탐사할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물론이요, 연료 대신 행성의 중력을 이용하면 30년이 걸릴 여정을 12년으로 줄일 수 있다. 이때를 놓치면 앞으로 10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흔치 않은 기회에 천문학자들은 이번 탐사를 섬세하게 계획했다.
탐사는 그 기대만큼이나 훌륭한 성과를 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근접 사진을 최초이자 유일하게 담았다. 망원경으로 보기 힘든 다른 위성의 환경을 조사했다. 보이저 1호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유명한 사진도 찍었다. 현재 지구로부터 200억 km 떨어져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시속 6만 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인간이 만든 탐사선 중 가장 멀리 여행한 것이다.
그 임무도 이제는 끝이 보인다. 두 대의 보이저호는 태양빛이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단단히 했지만, 1977년 발사된 후 벌써 50년 가까이 지났다. 관계자들은 빠르면 내년, 탐사선의 전력이 끝날 것이라 예측했다. 전원이 꺼지는 순간 보이저호의 임무는 종료될 것이다. 그렇지만 통신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탐사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 수는 없어도 계속해서 우주 어딘가를 빠른 속도로 유영할 것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순간을 생각했다. 계획했던 탐사가 끝나고, 우주 깊은 곳으로 멀어지는 탐사선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게 하자. 누구보다 멀리 갈 저 기계에 지구의 정보를 담아 보내는 거다. 원래 계획했던 임무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금속 판 하나. 모든 일을 마치고 태양계 밖의 텅 빈 우주 공간 속에 남겨질 탐사선에 30cm의 금박을 입힌 작은 가능성을 하나 실었다. ‘골든 레코드’다.
“이 레코드판은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를 만날 경우에나 재생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주라는 ‘큰 바다’에 작은 ‘병’ 하나를 띄운 것은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게는 어떠한 희망입니다.” – 칼 세이건
칼 세이건도 보이저호가 외계인을 만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우주는 넓고 척박하고 텅 비어 있으며 생명체에게 그다지 친절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지구는 생명을 틔워냈다. 아주 작지만 이 우주 어딘가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외계인을 만나고자 하는 인간들은 우주로부터 유의미한 전파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텅 빈 밤하늘에다 대고 우리가 여기 있다며 외친다. 대답 없이 조용한 우주를 보면 수많은 생명들로 북적이는 지구가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만약 어딘가에 존재하는 외계인이 우주의 기본 원소인 ‘수소, H’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우연히 보이저호를 만난다면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양계 세 번째 행성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함께 다양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우리를 찾아달라고.
조금이라도 오래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탐사선의 전력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장치들은 꺼버렸다. 편도 22시간이 걸리는 데이터 전송을 기다려 가며 탐사선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다. 그럼에도 기어코 전원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지성을 가진 외계인이 골든 레코드를 읽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얼핏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 가능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보이저 호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